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스몬 왕조 (문단 편집) === [[요한 히르카노스 1세]] 치세의 전성기 === 요한 히르카노스는 야심만만한 인물이었는데 그의 목표는 '''전 세계를 정복해서 모든 사람을 유대교인으로 만드는''' 유대교 세계제국이었다. 즉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같은 대제국을 세우고 대제국의 종교를 [[유대교]]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목표에 따라 요한은 정력적으로 정복전쟁에 임했다. 왕위에 오르고 3년 동안 요한은 남쪽 [[에돔]](이두매)를 공략해 과거 유대왕국의 남단 지역인 브엘세바까지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요한은 이두매인들을 죽이기보다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유대교로 개종하게 했다.[* 이렇게 개종한 이두매인들 중에 나중에 나온 인물이 바로 안티파트로스와 그의 아들인 [[헤롯 대왕]]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하스몬 왕조는 어디까지나 셀레우코스 왕조가 '''자치권을 허락한 가문'''이었을 뿐, 종주권은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있던 상황이었다. 안티오코스 7세는 하스몬 왕조에게 준 자치권을 거두고 다시 팔레스타인을 직접통치할 요량으로 대군을 이끌고 침공해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안티오코스 7세에게 맞설 힘이 없던 요한은 결국 돈의 힘으로 해결을 보기로 하고 '''[[다윗]] 왕의 능을 도굴해서'''(!) 은 3000달란트를 꺼내 안티오코스 7세에게 바치고 협상을 제안했다. 결국 양측에 합의가 성사되어 요한이 새로 정복한 이두매 지역을 포기하는 대신 유대의 자치권은 인정하기로 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요한은 웅크리고 때를 기다리다가 기원전 129년, 안티오코스 7세가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셀레우코스 왕조의 힘이 약해지자 다시 거침없이 정복전쟁에 나섰다. 유대의 접경지역을 평정한 다음 기원전 128년, 사마리아로 쳐들어가 복속했다. 이 과정에서 사마리아인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었던 [[게리짐 산]]의 신전을 파괴했다. 이어 요르단 강 동편의 사해 북서부 지역과 이두매 남부지역까지 평정하면서 하스몬 왕조는 시몬 때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요한의 치세에 하스몬 왕조는 대대적인 전성기를 누렸으나 한편으로는 종교적인 갈등으로 왕조에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율법주의자들인 하시딤들은 요한에게 대사제장직을 내놓고 율법에 맞는 대사제장을 세워야 함을 주장했다. 그런데 하시딤들이 하필이면 요한이 대사제장이 될 수 없는 근거로 제시한게 요한의 어머니가 안티오코스 4세 때 셀레우코스군에 끌려갔던 전적을 들어 율법상 이방인에게 더럽혀진 여인의 아들은 대사제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 어머니를 욕하는 말에 요한은 격분하여 하시딤들을 모조리 내쳤고 하시딤 대신 기용된 자들이 바로 현실주의자들인 사두카이파들이었다. 이로 인해 왕조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점차 드리워지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